[5.18 40주년] “눈물로 산 40년, 말로 다하겠소.. 나 죽기 전에 진상 규명이라도

https://news.v.daum.net/v/20200516043234307?fbclid=IwAR3MsVftxaHEBbt0Cu8aEKDYKQcrMVygc9wNZYZasoRadS9d786CslpISNs

5.18 최초 사망자 김경철씨 모친 엄근단씨 점심 먹고 나오다 잡혀간 청각장애 큰 아들은 도망을 가지 못하고 곤봉세례를 받고 사망하였다. 40년이 지난 지금고 김경철씨에 어머니는 그날을 아직 생생하게 기억하셨다.  36세에 5남매를 키우신 분이지만 그때만 생각하시면 잠을 못이루신다.  무엇보다 마음이 더 아팟던 점은 바로 김경철씨에 딸이였다 100일이 지나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 마저 잃은 손녀는 할머니와 함께살아야 했다.  처음에는 삶이 너무 힘들어서 “무정한 새끼야 죽으려면 혼자 죽지, 새끼하나 낳아놀고 내 가슴에 이렇게 멍이 들게 하냐 “고 속앓이도 하셨다.  임씨는 80년대 초 핏덩이 헤정이를 등에 업고 매일 광주 북구 망월동 묘지를 찾아다니며 아들 잃은 부모 20여명이 매일 모여 “전두환이 물러가라. 우리아들 살려내라” 라고 시위를 벌였다. 임씨는 온몸을 던져 목숨을 걸고 독재정권에 맞서 싸웠고 광주 항쟁의 정신을 알리기 위해 지금까지 전국을 백방으로 뛰며 상라 왔다. 아들의 피가 헛되지 않길 바래서 이다. 임씨는 이제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사신다. 보상금의 일부를 성당과 성모상을 짓는데 보태고 매일 기도하며 사시고 있다.5년전에는 광주 트라우마 센터의 치유과정을 거치며 많은 위로를 받으셧다. 광주사태가 40년이 지난 지금도 전두환은 사과조차 하지 않고 잘살고 있음이 매우 화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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