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췌한 안중근 사진은 과연 일제가 그를 비하하려 연출했나

한겨레

초췌한 안중근 사진은 과연 일제가 그를 비하하려 연출했나 (daum.net)

조선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의사 안중근이 독립지사 중 가장 유명한 인물로 일반에 각인된 데는 사진 매체의 위력이 컸다. 1909년 10월 거사를 치른 뒤 한달도 안 돼 그 용모를 담은 사진이 신문과 엽서로 대량 유포됐고, 대중이 이를 열광적으로 사들이는 전례 없는 현상이 일어났다. 삽시간에 한국과 일본 전역에 그의 얼굴이 알려졌다. 후대 한국인에게 그는 10종이 넘는 다양한 사진 이미지로 기억된다. 약지 첫 마디를 자른 단지의 흔적이 보이는 왼손을 코트 위에 올린 모습이나 흰 한복을 입은 사형 집행일의 모습 등은 애국선열의 대표 이미지로 자리잡았다. 러일전쟁 전후 일본에서 유행한 사진 매체의 전파력 덕분이었다. 업자들은 각지에 대리점을 만들고 사진을 간편한 크기의 엽서 형식으로 인쇄해 신속하게 유통했다. 일제가 배포한 사진엽서 2장에 안 의사가 쇠사슬로 묶여 꿇어앉은 초췌한 모습으로 연출됐다고 주장했다. 일본 무정부주의자 고토쿠 슈스이가 엽서에 안중근 찬양 한시를 추가한 새 판본을 제작하면서 기존 엽서의 비하 시도를 좌절시켰다는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도 교수는 이를 국수적 민족주의의 과장·왜곡이라고 반박한다. 사진 원본은 안 의사의 신원을 파악하기 위한 수사 자료 성격인데, 일반에 유포되면서 기념물 성격으로 바뀌었다는 주장이다.

우리가 흔히 발렌타이 대이로 알고있는 2월 14일은 안중근 의사에 사형선고 받은 날임을 잊지 말아야하고 우리나라의 한 독립 운동가를 정말 기념물 성격으로 바꾸었다면 이를 절대 넘어가서는 안되는 심각한 중대 문제이다. 일본은 아직까지도 이 만행을 인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사건은 정부에서도 진심으로 사과를 받아내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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